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책의 제목만을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뒤이어 생각나는 대목은 그리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이 책의 키워드는 '폭력'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과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폭력에 대해 고찰해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예 철학자로 불리우는 저자는 그의 중학생 시절 관리교육(강압적인 교칙을 통해 학생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교육법)의 전성시대에 까닭없이 당했던 교사에 의한 체벌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폭력은 안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는 교사들이 체벌이라는 형태로 폭력을 행사하는 현장을 고발합니다.
저자는 '폭력'에 대해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폭력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폭력은 경우에 따라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정당할 때도 있고, 정당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때와 경우에 따라 긍정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폭력이 어떠한 경우에 긍정되고 혹은 어떠한 경우에 부정되는 가를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이 듭니다.
헐리웃 액션 영화의 대부분은 폭력과 살인이 주제입니다. 때로 우리는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중세때 교두보에서 처형을 받는 상황 또는 화형의 장면에는 세 부류의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집행을 당하는 사람과 집행자와 관객들입니다. 끔찍한 장면을 보면서 민중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강제 동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진해서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우리의 존재 자체가 폭력을 바탕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막스 베버와 법학자 칼 슈미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서 폭력에 대한 불가피성과 폭력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폭력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그것을 인정 할 수 있는 내면적 힘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다." - 막스 베버
"인간을 폭력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위험한 존재로서 수용하는 것이 정치적 사고의 전제가 되며, 이러한 현실을 도덕적인 관념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 칼 슈미트
저자는 소년범죄 문제를 논의하는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습니다. 토론장에 있던 한 중학생이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겁니까?" 라는 질문을 하자, 패널리스트인 전문가들 모두가 대답을 제대로 못했답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저렇게 걸리고, 저렇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걸리는 현학적인 대답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그 해답을 '언어'에서 찾고 있습니다. 언어의 여러 기능 중에서 언어가 사실관계를 기술함으로써 일정한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는 '행위'를 수행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비록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는 없지만, 상대방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도덕을 정당하다고 납득해줄 때 언어는 성질상의 본분을 다했다고 봅니다.
이어서 저자는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론을 통해 폭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도덕의 기초를 때와 경우를 불문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라", "~하지 마라"는 정언명법(定言命法)과 '신용을 잃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을 하지 마라'라는 가언명법을 예로 듭니다. 그러나 저자는 칸트의 정언명법 즉, '여하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이 무너진 사례를 그(칸트)가 사형을 인정했기 때문에 이는 크나큰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폭력(전쟁)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만물은 흐른다"는 말을 남긴 헤라클레이토스(BC 530~470)는 또한 전쟁이야말로 모든 것의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아테네를 비롯해서 헤라클레이토스가 숨을 쉬었던 당시의 도시국가들은 전쟁이 삶의 일부라고 할 만큼 군사적인 사회였습니다. 무기로 무장하여 도시를 방어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시민의 자격을 가졌다고 합니다. 시민은 곧 무사였으며, 철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철학에 등장하는 용기, 절제, 정의, 지혜 등은 공허한 탁상공론의 산물이 아니라 삶 속에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현실적 문제였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아울러서 국가와 폭력, 그 불가분적 관계와 국가의 형성과정에 대해 논지를 펼치면서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 중에 행사된 폭력에 대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정부주의를 주창하는 아나키즘에 대해선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만들어내려는 움직임을 억제하려면 역설적이게도 반드시 폭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땅에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하는 국가를 통해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2) 합법성은 갖지 않으나, 그 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폭력 조직으로부터 보호받음으로써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3) 스스로 폭력을 조직하고 행사함으로써 자력으로 범죄나 외부의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등입니다.
물론 이 세 가지 제안중에 당연히 1)번을 택해야겠지요. 그렇다면 비록 폭력적인 성향이 있긴 하지만(과다 세금 징수와 특권층이나 특정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도 폭력의 일부로 본다면) 국가를 인정하고 국가, 위정자들이 제대로 된 마음자세를 갖고 책임감있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이끌어가게 되길 기대해야겠다는 생각만 남습니다.
'폭력'이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삼은 책을 읽다보니, '폭력'에 대한 다른 생각을 통해 정화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푸코가 20세기는 그의 시대가 되리라 예언했던 들뢰즈가 떠오릅니다. 우리의 사유가 작동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상태에서 우리의 사유는 좀처럼 작동하지 않고 잠들어있습니다. 휴면상태입니다. 이 때, 우리의 사유를 일깨우는 것은 뭔가 충격적인 것, 들뢰즈 식으로 표현하면 사유에 '폭력'이 가해지는 경우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놀라운 것, 경이로운 것 앞에서 우리의 정신이 사유를 작동하는 '착한 폭력'과 만나는 일상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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