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의 행복 철학
서양철학사를 통해 만나는 버트런드 러셀은 두툼한 안경을 쓴 노학자의 고집스런 눈빛입니다. 각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와 철학적 주제를 선택하는 능력의 탁월함과 더불어 자신감 넘치는 명료한 서술로 철학의 숲으로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행복의 정복]은1930년에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러셀이 철학을 논하던 위압감 넘치는 서재에서 나와 테라스가 있는 커피숖에서 제자들 또는 지인들과 어떻게하면 우리가 좀 더 행복한 삶을 살다 갈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는 분위기입니다.
러셀의 [행복의 정복]은 어찌 번역과정에서 그리 되었나 하고 습관처럼 원제를 확인해보니 "The Conquest of Happiness"라고 되어있군요. 책의 제목을 대할 때마다 정복을 하다하다 이젠 행복까지 그 대상이 되어야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습니다.
러셀이 [행복의 정복]을 쓸 당시엔 '우울증'이라는 용어 자체가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스트레스'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서가는 몇몇 사람들(대중적으로는 인정을 못 받았지만)을 제외하고는 '불행'이 의학적 질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즉, 심인성(心因性)질환에 대한 인식자체가 불가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러셀은 불행을 극복대상이자 도전 과제로 생각하는 선각자(先覺者)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러셀이 책의 제목을 [불행의 정복]이라고 하지 않고, [행복의 정복]이라고 지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긴 합니다.
프리랜서 언론인이자 작가인 팀 필립스가 [행복의 정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러셀의 원저를 이미 오래전에 읽긴 했으나 저자는 어떤 각도에서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궁금했습니다. 러셀 영감님을 다시 뵙는 마음으로 책을 대합니다.
저자는 이 책이 당신에게 행복을 뭉텅이로 덥석 안겨주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행복 한 모금씩을 건네 삶의 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고 당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합니다.
"바라건대, 나 동물들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네. 그 얼마나 느긋하고 자족하는 모습들인지." 러셀은 월트 휘트먼의 시로 책의 서두를 엽니다. "동물은 자신의 상황을 걱정하거나 한탄하는 법이 없다. 어둠 속에 잠 못 이루며 자신의 죄 때문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러셀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계에서 느끼는 즐거움, 그 세계안에서 자신의 역량껏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 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행복의 근원이 된다고 말합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잠재능력을 개발하는 일 못지않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늘 내안에는 실현되지 못한 야망과 욕망앞에 무릎을 꿇고 좌절된 모습만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이 있는 부모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프랭클린 P. 존스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군요.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되는 건 아주 많다. 가령 나의 인내심은 얼마만큼인가 하는 이런 것."때로는 인내심이 바닥이 납니다. 인내심이 증오로 바뀌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요 며칠 뉴스시간에 나오는 30대 어머니. 세 살짜리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가방에 담아 저수지에 버린 사건. 행복을 논하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러셀은 이렇게 충고해주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든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는 소심하고 모험심이 없으며 두려움과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 같다. 이런 아이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즐거운 탐험을 떠난다는 기분으로 나설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요. 세상에서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자식을 제대로 키우는 것이지요. 그러나 냉정하게 그 '제대로'라는 것이 부모 마음대로 즉, '내 맘대로' 키우는 것이라면 어쩌면 아이들도 칼을 갈듯 인내심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기운을 북돋우는 최고의 방법은 다른 누군가의 기운을 북돋우려 애쓰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입니다. 덧붙여 러셀은 우리 각자가 '인생의 흐름' 속에 귀속된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는 행복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 우주의 일원임을 지각하는 사람은 우주가 기꺼이 베풀어준 놀라운 장관과 기쁨을 마음껏 누린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이후에 세상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사실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에, 죽음을 떠올리면서 안절부절 괴로워하지 않는다."
이미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읽으신 분들은 리마인드 하는 의미에서, 아직 못 읽으신 분들은 책의 엑기스를 맛본다는 느낌으로 읽어보실만 합니다. 저자가 각 챕터 말미에 붙인 '행복 한모금'이라는 짧은 글로 입술을
축이는 일상이 되소서.
'201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Let's see Grammar / 키출판사" (0) | 2012.12.18 |
---|---|
"사랑하라 너를 미치도록 / 로베르트 베츠 / 송소민 / 블루엘리펀트" (0) | 2012.12.05 |
"숨겨진 인격 / 데이비드 데스테노,피에르카를로 발데솔로 공저 / 이창신 역 / 김영사" (0) | 2012.11.29 |
"로마제국 쇠망사 / 에드워드 기번 / 이종호 / 지만지" (0) | 2012.11.20 |
"달라이 라마 111展 : 히말라야의 꿈 / 김경상 / 작가와비평" (0) | 2012.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