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스톤 엔젤 / 마가렛 로렌스 / 삼화"

쎄인트saint 2012. 11. 20. 16:41

 

소설은 “돌로 된 천사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서 있었다.”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헤이거는 파파 할머니가 된 아흔 살 무렵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헤이거의 고집 센 영혼이 태어 날 때 본인의 가녀린 영혼을 포기한 그녀의 어머니 묘 앞에 세워져 있는 천사. 천사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읍내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녀는 돌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눈도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아 갑절로 장님이었습니다. 천사를 조각한 사람은 안구를 빈 채로 두었지요. 주인공 헤이거는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를 알지도 못하는 천사가 읍내를 내려다보며 우리 모두를 천국으로 가도록 종용하고 있다니..참 이상하다. 더군다나 눈도 없으면서..”

이러한 첫 그림이 막연하게나마 전체 소설의 분위기를 앞서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 좋은 밤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마라.

늙은 자는 날 저물 때 열 내고 몸부림쳐야 하리니.

빛의 소멸에 분노, 또 분노하라.

 

(.........)

 

달아나는 해를 붙잡고 노래하던 사나운 이들은

섭섭히 해를 보내준 것을 뒤늦게 알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퍼하리니.

그 좋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마라.

 

                

                        _ 딜런 토마스

 

 

빛이 생명이라면 당연히 밤과 어두움은 그 반대입니다. 마지막 눈을 감으면 새로운 빛을 따라간다고 하지만, 아직 못 느껴봤습니다. 죽음의 이유는 수도 없이 많고 삶의 이유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합니다. 사람의 몸은 부서지기 쉬운 물건입니다. 아니 몸만 그런 것이 아니지요. 마음 역시 열처리도 안 된 유리그릇 입니다. 열불을 감당 못해 쉽게 금이 가고 깨져버립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한 여인의 일생?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 그리고 삶의 마무리. 우리의 삶은 어쩌면 평범한 일상 같지만, 전혀 같은 삶은 없지요. 단지 그저 비슷해 보일 뿐인 그런 삶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살다간 흔적은 비슷하지요.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 뿐이지요.

 

이제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추억에 빠진다. 자주 이러지는 않는다. 아니, 어쨌든 그렇게 자주 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노인이 과거에서 산다고 말하지만, 허튼소리지. 요즘 나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하루하루를 진귀하게 여기고 있다. 마치 처음으로 민들레를 볼 때 잡초 같은 면을 잊어버리고 그저 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탄하듯, 오늘 하루를 꽃병에 꽂고 감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헤이거의 어린 시절은 그리 편안해 보이지가 않습니다. 헤이거의 아버지는 그의 아내와 맞바꾼 막내딸에게 애증(愛憎)을 갖고 있군요.

“아버지는 언제나 자작나무로 회초리를 만드셨다. 아버지의 아버지도 비록 다른 나라에서지만 자작나무를 쓰셨다고 했다.”실컷 때리고 나서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넌 날 닮았다. 근성이 있어, 그건 인정하마.” 그리고 서둘러 말이 이어진다. “내가 널 부득이 체벌 할 때,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은 갓난아기도 압니다.

 

헤이거는 예순 다섯 살이 다 되어가는 아들 마빈네 부부와 같이 삽니다. 인종 불문 지역 불문 고부간의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노인의 양로원행이 거론됩니다. 사실 이 시점이 헤이거의 회상이 시작된 때이지요.

 

헤이거는 집을 떠나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녀 아버지의 반대로 집에 남아 아버지의 (가게)장부를 관리하며 여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헤이거의 인생의 길이 달라지는군요. 헤이거의 삶의 여정은 선뜻 이해가 안가는 점도 있습니다. 어찌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디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답이 있나요? 제대로 채점을 매길 시험관은 있나요?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가 믿는 신 앞에 숨죽이고 앉아서 판결을 기다리겠지요. 아니 제대로 살았느냐 엉터리로 살았느냐는 본인이 더 잘 알지요. 어쨌든 헤이거의 삶의 흔적이 그리 탐탁하지는 않지만 이해는 됩니다. 그녀의 고집, 이기심 그리고 편협함까지도 포용하게 됩니다. 어쩌면 헤이그의 삶은 보편적인 우리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헤이그의 삶은 어쩌면 저자인 마가렛 로렌스의 삶의 여정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26년 캐나다 매니토바 주 니파와에서 태어난 마가렛 로렌스는 부모를 모두 잃고 가부장적인 외조부 밑에서 십대 시절을 보냅니다. 부모의 사별, 외조부에 대한 적개심, 가문에 대한 관심은 어린 로렌스에게 깊이 각인되었고, 이후 그녀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하게 됩니다. 로렌스는 아내이자 어머니, 작가라는 1인 3역의 한계를 느끼고 남편과 헤어진 후 2명의 자녀와 함께 캐나다로 돌아옵니다. 이 소설 〈스톤 엔젤〉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복잡 미묘한 문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삶의 무게만큼이나 강하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어지는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게 될 때 한껏 치장된 자서전이 아니라, 헤이거처럼 내면의 상처와 고름까지도 내보여주며 갈 수 있으려나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나는 내 고치에 누워있다. 실에 빙빙 엮어서 꽉 조여 있다. 젊은 애들이 와서 내게 주사를 찔러댄다. 그러면 꽉 조여진 실이 느슨해진다. 그래. 좀 낫다. 이제 숨을 쉴 수가 있다.

 

나는 누워서 내가 지난 90년 동안 했던 진정으로 자유로운 행동을 떠올려보려고 애쓴다. 그렇게 여겨질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근의 두 가지 일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나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이는 다른 여느 승리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전투 끝에 쟁취한 전리품이 하찮아 웃을 일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거짓말이었다. 그렇지만 거짓말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 말은 적어도, 드디어 일종의 사랑이라 할 만한 마음으로 한 말이었으니까.

 

헤이거는 임종의 순간까지도 꺾이지 않는 고집불통의 자신을 그녀의 아버지가 그러하듯 애증(愛憎)의 눈길로 바라보며 이 땅을 떠납니다.

 

 

리뷰를 마무리 하면서 문득 인도의 속담하나가 떠오릅니다.

 “네가 세상에서 사라지는‘내일’은 틀림없이 온다.”

 

 

 


스톤엔젤

저자
마가렛 로렌스 지음
출판사
삼화출판사 | 2012-10-0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아흔 살,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나다!캐나다가 사랑하는 여성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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