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유감』 문유석 / 21세기북스
1. 살아감은 판단과 결정의 연속이다. 나의 삶 여정에서 후회 없는 판단을 하며 살아감이 쉽지 않은데 하물며 타인의 삶의 나머지 부분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함이 일상인 판사의 생활은 어떨까? 그 마음은?
2. “이 글은 저라는 한 개인이 판사의 일을 통해 비로소 조금씩 세상을 발견해 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이건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죠. 충분히 세상에 대해 알고 고민해 온 원숙한 인격의 사람이 비로소 남을 재판하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데 단지 시험 몇 개의 성적만으로 젊고 미숙한 채 그 책임을 맡았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성장기에 유독 타인에 무관심한 철저한 개인주의자에 에고이스트였고,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3.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이렇게 솔직한 자기 고백을 하는 것에 일단 호감이 간다. 법관들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적으로 포커페이스에 권위주의 일색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4. 책은 2부로 구성되어있다. ‘판사, 사람을 배우다’. ‘판사, 세상을 배우다’. 글은 처음부터 책 출간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지은이가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분야의 재판을 경험하면서, 또 미국 로스쿨에서 해외연수 기회를 가지면서 느낀 것들을 그때마다 법관게시판이나 법원회보에 썼던 글들이라고 한다.
5. 첫 장을 펼치면 ‘막말 판사의 고백’이라는 글을 만나게 된다. 남 이야기가 아닌 지은이 자신의 이야기다. 피고인은 50대 후반의 나이인데 전과가 20회가 넘고 교도소에서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죄명은 상습사기. 피고를 대면한 지은이는 판사의 자격으로 한 마디 단단히 했다. “피고인, 계속 그렇게 거짓말할 겁니까? 솔직히 말해 보세요. (.....) 피고인, 평생 그런 식으로 없는 친구나 친척을 내세워 범행을 반복했는데 또 그 이야깁니까? 교도소 콩밥도 국민의 혈세로 마련하는 겁니다. 피고인에게는 콩밥도 아깝습니다!” “판사님, 콩밥도 아깝다니요? 저는 이 나라 국민도 아닙니까? 사람도 아닙니까?” ‘콩밥도 아깝다’고 한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려 그날 밤 잠을 못 이룬다. 완소(심)남이다. 판검사들의 호통이나 막말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화되어 있는 요즈음 실정에 지은이는 완전히 다른 존재감이다. 어쨌든 재판 기일에 지은이는 피고인에게 정중히 사과를 한다. 물론 주위에선 굳이 공개사과까지 할 필요가 있나 정 하고 싶으면 개인적으로 하라는 충고가 지배적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마음 지시를 따라 재판정에서 공개 사과를 한다.
6. ‘한 번도 용서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꼭지 글의 제목은 ‘한 번도 사랑 받지 못한 사람’으로 읽혀진다. 40대 후반의 피고인. 중2때 절도로 소년원에 입소한 것을 시작으로 22년간의 옥살이는 ‘도둑질’이었다. 출소하는 그날이 바로 절도죄로 잡히는 날이기도 했다. 판사로서 이 피고인을 어찌해야하나 고민하던 순간. 피고인의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을 찌른다. “나는 단 한 번도 용서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지은이는 고민 끝에 개인적으로 아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사의 대답은 이랬다. “저도 의사이지만 이런 이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가 아닙니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입니다.”
7. 아무래도 법정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런 유머(실제 상황)도 실려 있어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조폭 관련 사건을 심리 중이던 어떤 형사부 재판장님이 주인공이다.
재판장 : A 피고인, OO파 조직원 맞지요?
A 피고인 : 아닙니다, 전 이미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재판장 : B 피고인, OO파 조직원 맞지요?
B 피고인 : 저도 탈퇴했습니다!
재판장 : 그럼 C 피고인, OO파 조직원 맞지요?
C 피고인 : 재판장님, 저도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 잠시 침묵)
재판장 : 그럼 조직은 누가 지키나요?
8. 지은이 문유석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소년 시절, 좋아하는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놓고 섬에서 혼자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개인주의자였으면서도 ‘솔직히 그저 좋은 직업을 갖고 싶어서’ 고시공부를 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97년 서울 지방법원판사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부끄럽게도 판사의 일을 하면서 비로소 사람과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고 한다. 지은이가 밝히는 이 책의 제목 ‘판사유감’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의미는 ‘判事有感’. 판사로서 재판을 하면서 느낀 것들. 두 번째 의미는 ‘判事遺憾’. 이 사회의 많은 분들이 판사에 대하여 느끼는 아쉬움과 불만을 잘 알기에 이를 고민하고 반성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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