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는데 / 외로운 나룻배에 나는 홀로서 간다 / 내 몸이 용의 등 위에 타고 있는 건 아닐까? / 돛이 솟구치는 물보라와 나란하다 / 닻줄을 맬 곳조차 없는데 / 선창 밖으로 악어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 금산과 초산은 나그네가 오는 줄을 아는 것인지 / 성 밖으로 나와 멀리서 나를 맞이한다. - '강을 건너는데 거센 바람 불어와' 전문
이 시는 시인(원매)이 살던 강소성 남경을 떠나 배를 타고 장강을 따라가다 금산과 초산이 있는 진강시를 거의 눈앞에 두기까지의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성남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니, 그 안에 타고 있는 시인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긴장될까. 더군다나 외로운 나룻배에 혼자라니. 내가 다가간 것이 아니라, 금산과 초산이 마중 나온다는 표현이 백미다. 금산과 초산은 지금의 전장시 일대에 있는 풍광이 기려하고 아름다운 산이라고 한다.
원매는 원래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 직접 자연 산하를 둘러보고 흥취를 느끼려는 유람벽이 있었다고 한다. 시인의 명승지 유람시기는 그의 나이 67세 때부터 82세 까지다. 배로, 가마로 또는 걸어서 명승지를 돌아보며 스냅 사진을 남기듯 詩로 남겼다.
옆으로 납작한 봉우리 /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 / 한 봉우리 한 봉우리 연이어져 걷고 또 걷는다 / 이윽고 한 봉우리 앞에 이르니 더 이상 갈 수 없는데 / 내가 가마꾼에 업혀 하늘로 올라간 건 아닐까 의심이 든다 / 가마꾼이 웃으며 말한다 / "여기가 동정서산 표모봉의 가장 높은 꼭대기랍니다." / 멀리 사방으로 하늘을 보니 끝없이 푸르고 / 만 줄기 흰 물결은 시야를 어지럽힌다 / 유리처럼 평평하게 펼쳐진 호수에 비친 대지는 잠겨 있고 / 몇 갈래 밥 짓는 연기 아래 인가가 숨어 있다 / 몸소 속세 밖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 어떻게 호수 한가운데 산이 있음을 알았겠는가! / 오직 배와 노의 힘을 빌려야만 / 사람 사는 세상과 서로 소통할 수 있으니 / 무릉도원처럼 닭 울고 개 짓는 소리 들으며 / 태호의 늙은 어부는 분주하다 / 그렇지 않다면 설사 신선이라도 바라보기만 한 채 다가갈수 없을테니 / 천추만대에 걸쳐 누가 봉래궁에 이를 수 있겠는가! / 하느님이 내가 온 걸 시샘이나 하는 듯이 / 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 가마 덮개가 떨어졌다 다시 날아가고 / 갓끈은 목에 걸기 어렵다 / 차가운 구름이 입안에 가득하건만 삼킬 겨를도 없이 / 교룡의 기운 같은 비바람이 사람에게 다그쳐 온다 / 두려움에 오래 머물기 어려워 / 안개 속에서 저절로 발길이 돌려졌다 / 자줏빛 고래는 오지 않고 누런 학은 멀리 있어도 / 노부는 길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바람이여, 바람이여, 나에게 불어오는 이유가 있음을 아나니 / 세상에 제일 높은 사람은 되지말라 나에게 권하는 것이리라. - '표묘봉에 올라' 전문.
표모봉은 태호(太湖) 동정서산(洞庭西山)의 서남쪽에 있으며 해발 337미터다. 동정서산의 최고봉으로 태호 72봉 중에서 으뜸을 차지한다. 항상 운무에 싸여 있기 때문에 마치 전설 속의 표묘한 선경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인은 가장 높은 표묘봉에 오래 서 있지 못하도록 비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마치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권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높다고 칭송해주는 사람은 언젠가 같은 입에서 가장 낮은자로 불려질 수도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높다고 자만하는 이들의 어리석음은 무엇으로 치유될꼬.
청대(淸代) 중엽의 주요 시론가이자 시인이었던 원매는 시단에 성령설(性靈說)을 제창하며 시에 성령(性靈)을 자유로이 표현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성령설은 청대 시단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전통 규범에 구속되어 있던 청대의 시가를 해방하는 역할을 했다. 원매가 말하는 성령은 크게 성정(性情)과 영기(靈機)의 의미를 함께 포괄한다. 성령의 '성'이 성정이라면 '영'은 영기라 할 수 있다. 성정의 의미는 대략 시인의 진실한 감정이란 뜻으로, 영기는 시인이 천부적으로 지닌 재능과 영감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결국 원매는 시에 시인의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천성적으로 타고난 시적 재능을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2014 '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19 [뉴노멀 / 피터힌센 / 흐름출판] (0) | 2014.01.24 |
---|---|
북리뷰 2014-017 [열세 걸음 / 모옌 / 문학동네] (0) | 2014.01.22 |
2014-015 [동물이 정말? / 엠마 다즈 / 솔빛길] (0) | 2014.01.18 |
북리뷰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드니 로베르외 / 시대의창] (0) | 2014.01.17 |
북리뷰 2014-013 [공병호의 인생사전 / 공병호 / 해냄] (0) | 2014.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