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한 젊은이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이 친구, 어둡고 긴 터널 한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현재는 빛도 한 점 안 들어오고 있답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이름 붙일 수 없는 것(Unnamable)]의 마지막 구절이 딱 들어맞는 상황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 모르겠어. 아마도 끝까지 모를 테지. 너는 알지 못하는 정적(靜寂)에 잠긴 채. 너는 반드시 계속해야 해. 나는 계속 할 수 없어. 나는 계속 할 거야."
2. 첫 무대는 정신병원입니다. 이 젊은이의 이름은 프랜시스구요. 프랜시스의 어머니가 입원해있습니다. 어머니 곁에 앉아서 프랜시스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눈을 감고서 자신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바닷속 깊숙이 입수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자유란 바로 그런 걸 말하는거지."
3. 불면증과 피해망상의 그의 어머니. 어머니의 나이는 마흔 살입니다. 프랜시스는 18살을 앞두고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지요. 그에겐 이부(異父 兄第)가 있군요. 얼마 전까지 함께 살던 의붓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자 프랜시스의 동생은 따로 살고 있습니다. 좀 멀리서..
4. 프랜시스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은, 도대체 내 친아버지는 누구냐입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군요. 딱 한 번, 아주 멀리 있는 어떤 사람과 잠시 연애 관계에 있었다고 말했지요. 더 이상 들려주는 이야기가 없자. 나름대로 상상을 합니다. '아주 멀리'라는 말 뒤에는 로스엔젤레스에 놀러 왔다가 레이커스 경기를 관람하고 나서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내고 떠난 여피족 건달 녀석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까지 합니다.
5. 사는 형편이 궁색합니다.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있고,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이혼한 의붓아버지가 생색내며 보내주는 얼마 안 되는 돈은 어머니 치료비로 다 들어가고, 참 한심합니다. 수업이 끝나면 알바로 일을 해야하니 공부가 될리가 없지요.
6. 프랜시스는 그저 모든 것에서 놓여지고, 떠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뭘 해보고 싶어도 방법이 안 떠오르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결정적으로 고등학교에서 유급이 확정되는군요. 나름대로 말썽없이 학교 생활은 했지만, 성적이 협조를 안 해줬군요. 잠시 정신이 돌아온 어머니가 그것을 알고 다음 해에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늘어놓자. 프랜시스가 이렇게 답합니다. '이 지겨운 클레이몬트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니느니 차라리 군에 자원입대해서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의 전쟁터로 나가겠다'. 돈이라도 벌겠다는거지요. 프랜시스는 사실 이 말을 농담반 진담반 뱉어놓은 말이지만, 어머니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7. 그리곤 잠시 맑은 정신의 어머니가 프랜시스에게 편지를 써놓곤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집니다. 그 편지엔 프랜시스가 그리도 궁금해하는 출생의 비밀이 적혀 있군요. 이 소설의 진입부가 좀 지루한 듯 하던 참에 분위기가 바뀌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편지의 키워드는 "넌 시험관 아기였단다, 프랜시스" 프랜시스의 어머니는 단지 이 말을 전해주고 싶어서 지난 과거를 해명합니다. "나는 이 사실을 너에게 차마 알려줄 수가 없었어. 그러나 넌 평범한 시험관 아기가 아니었어. 만약 이것이 너에게 위안이 된다면 말이야. 너는 특별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단다."
8. 이 때부터 프랜시스는 그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장본인인 정자 제공자인 그의 아버지를 찾아나섭니다. 아, '정자 은행' 들어보셨지요? 국내에도 공식, 비공식으로 추진되는 부분이지요. 문제는 불임 부부이기 때문에 시험관 아이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돈많은 어느 야심가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기 때문이지요. 불임부부도 포함되긴 했지만, 이를 주도한 먼로라는 백만장자는 단지 우생학적인 면에만 관심이 컸지요. 그러니까, 똑똑한 아이들만 낳아서 세상을 바꿔보자는 어찌 보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지요. 먼로이야기론 천재들은 후손이 없는 반면 멍청이들은 자식들을 줄줄이 낳는다나 어쩐다나..
9. 그래서 태어 난 겁니다. 프랜시스가 정자제공자인 아버지를 찾아나섭니다. 긴 여행을 떠납니다. 웬지 그 아버지는 머리도 좋고, 건강하고, 잘 생기고 아뭏든 그를 만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행길엔 프랜시스의 친구인 그로버가 동행합니다. 학교에서 왕따인 그를 프랜시스가 살갑게 대해주다보니 절친이 되었군요. 그리고, 엔메이라는 또래 아가씨가 함께 합니다.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정신병원에서 알게 되었지요. 엔메이는 자살을 기도하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지요. 프랜시스의 여행길에 합류하기 위해 병원에서 탈출합니다.
10. 프랜시스는 아버지를 만났을까요? 예..물어물어 힘들게 만나긴 했습니다. 그러나 해피 엔딩이 아니네요. 자, 이젠 프랜시스는 다른 꿈을 꿉니다. 그가 자주 꾸는 꿈이 있습니다. 잠들어있을 때 말입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큰 돈을 따는겁니다. 아버지를 찾아 나섰을 때 4천 달러를 날렸지요. 다시 그는 그곳에서 배팅할 자금을 모으기 위해 2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합니다. 드디어 5천 달러를 손에 쥐고 라스베이거스로 달려갑니다. 드디어 배팅. 50만 달러까지 법니다. 그리고 50만 달러 모두를 한 곳에 겁니다. 100만 달러를 만드느냐 다시 무일푼이 되느냐입니다. "검은색과 빨간색 숫자 칸을 들락거리던 공은 딸깍 하며 공이 최종적으로 어떤 칸에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프랜시스는 숨을 멈춘 채 눈을 떠봅니다.
11. 젊은 작가 베네딕트 웰스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나는 두 가지로 축약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세 젊은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도 있는 캐릭터입니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구요. 아무리 노력하면 뜻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한계는 있지요. 미국을 '꿈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하루 아침에 신분상승도 이뤄질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분이지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느냐가 평생을 가고, 자손들에게도 대를 물려주게 되지요. 좋은 자질, 좋은 여건만 물려준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운명이려니 받아들여야 할까요? 주인공 프랜시스의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면서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을 생각하며 더욱 겸손해지렵니다. 올려다보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몸도 낮추고 마음도 낮추렵니다.
12. 또 하나는 유전자조작과 변형이 날로 더해가는 현대 유전공학의 위기감을 함께 느껴보자는 의도도 있습니다. 더하면 더하지 절대 덜해지지 않을 상황이지요. 우수한 두뇌들로만 채워지는 이 세상이 편해질까요? 나는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닮은 꼴이라곤 전혀 없는 자갈로 이뤄진 담장 보셨지요? 그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고, 세상의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면서 어우러져 가는 삶이면 되었지. 더 뭘 바랍니까. 그 이상의 것들은 모두 허상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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