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북리뷰 2014-029 [연민이 없다는 것 / 천정근 / 케포이북스]

쎄인트saint 2014. 2. 8. 14:13

 


연민이 없다는 것

저자
천정근 지음
출판사
케포이북스 | 2013-12-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연민이 없다는 것은 러시아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후에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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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열면 모스끄바의 레닌도서관이 독자를 맞이한다. 사진이 아닌 글로 인사를 한다. 레닌도

서관 이야기를 듣다보면 레닌이 멋진 사나이로 부활한다. 레닌은 망명 시절 서유럽의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을 했다. 1917년 혁명이 성공하자 가장 먼저 고대로부터 당대를 망라하는 사상 초유의

도서관 건립을 계획한다. 그 야심찬 노력의 결실이 바로 '레닌도서관'이다.

 

2. 혁명가와 도서관은 안 어울릴 듯 하지만, 생각해보면 혁명도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이성이 함

께 어우러질 때 성공률이 높을 것이다. 레닌도서관 이야기를 좀 더 하고싶다. 나는 도서관이 참

좋기때문이다. 레닌도서관은 그 규모나 질로 세계 유수의 큰 도서관 중 하나라고 한다. 35만 여의

다양한 문서. 2,800만 권이 넘는 인쇄물, 정기간행물, 1,100만 권 이상의 책을 포함한 세계 각지

의 연재물 등을 수장하고 있다. 희귀문서도 많다고 한다.

 

 

 

3. 저자는 모스끄바 탄생 8백 50주년을 기념하여 국가 기념도서관 앞에 새로이 건립된 도스또옙스

끼의 흉상을 보며 상념에 젖는다. 도스또옙스끼의 흉상은 의자도 아닌 좌대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그나마 왼손은 힘에 겨운 듯 바닥을 짚고 오른손은 허벅지에 올려놓은 채 세계의 고민을 혼자 짊

어진 듯 고뇌에 찬 표정으로 그늘진 길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4.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바와 같이 도스또옙스끼는 살아 생전 그리 밝은 삶은 아니었다. 몰락한

귀족인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부친은 무지무지하게 완고하고 편협한 인물로 타인과의

교통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한다. 성장기 도스또옙스끼는 부친에 대해선 '포비아(Phobia)'

가 심어질 정도였다. 부친은 농노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는다. 이 소식을 들은 도스또옙스끼는 간

질 발작으로 우선 몸이 반응을 보였다. 그후 그의 작품 곳곳에 '아버지 살해'라는 문학적 모티브

로 굳어진다. 혐오와 살인충동, 죄의식과 자책을 동반하는 줄거리로 변형되며 지속적으로 나타난

다. 부친이 살해당하기 전에 그의 내면에선 본래부터 자기 아버지를 죽고 싶을 만큼 무서워했고,

죽이고 싶을 만큼 혐오했던 것이다. 도스또옙스끼 이야기는 이만.

 

 

5. 저자 천정근은 고교 졸업후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곤 닥치는 대로 읽고 쓰는 문청으로 보냈다고

소개된다. 마음 속 어떤 욕구가 이 땅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가 향한 곳은 아무런 연고 없는 낯설

고 먼 러시아땅이었다. 그의 표현을 옮기면 '병든 자신의 그림자 하나, 약 한보따리를 싸들고' 떠

난 유학길이었다. 모스끄바국립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했다. 저자는 러

시아가 그의 밑둥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열공중에 아내를 만나 열애까지 마쳤다. 귀국후 뒤늦게

신학을 공부했다. 현재 자유인성서학당에서 성서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6. 저자는 이 책에서 그의 학문, 일상, 믿음에 대한 글들을 진솔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나는 돈

을 사랑한다.' - 저자는 빈궁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그에겐 돈이 곧 생

명이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굶기를 밥먹듯 했기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 월사금이라고 했던가 육성회비라고 했던가를 제때 못내서 허구헌날 복도에 무릎꿇고 앉아

팔을 들고 있었다. 참으로 몸과 마음이 힘든 유년시절이었다.

 

7. '나는 돈을 사랑한다'라는 이 도발적인 고백을 한 사람은 명말의 사상가 이탁오(본명은 이지,

1527~1602)라고 한다. 그는 "어질도다 안회여!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작의 물을 먹으면서 좁고

누추한 거리에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근심하여 견디지 못하거늘, 안회는 그 속에서도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안회여!" 라고 칭찬한 공자를 비웃었다. 자기는 아무리 즐거워하려

해도 이 가혹한 가난과 처절한 절망 가운데서 즐거울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지는 말단 관리 시

절 기근과 가난으로 자녀들이 굶어죽는 참척의 슬픔을 겪기도했다.

 

8. 돈이 없음을 고상한 인격으로 변질시키는 일은 나도 싫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처럼 "저 포

도는 실거야~!" 하고 싶지 않다. 돈 많은 사람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별로 없어. 라고

자위하지도 않으련다. 이런 면에서 저자와 한 마음이다. "오직 일념의 집중된 에너지로 내게 부관

된 짐을 짊어지고 가보리라. 나는 가난한 나에게 애정 없는 그 누구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련다.

그보다는 나에게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돈을 나는 사랑한다. 그 돈을 나는 하

늘로부터 받고 있노라 믿고 있다."

 

 

9. '연민이 없다는 것'. - 저자는 어린 새끼였을 때부터 키우던 개가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보

며 가슴이 저리다. 상념은 정치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의 무자비한 살육으로 넘어간다. 그저 그들의

입으로 나온 말이나 문서상으로 셀 수없이 많은 인간의 생명들이 무너지고 사라진다. 그 인간들이

법정에 서는 기회가 마련되면 맞춤형 대사가 입에서 튀어나온다. '나는 오직 국가를 위해서 했을

뿐이다'. 국가를 위해서? 국가를 두 번 죽이는 말이다.

 

10.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가 힘이 들때마다 그 마음을 치유하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글들이라

고 한다. "자족하는 삶이 쉽지 않을 때 늘 따라오게 마련인 지독한 외로움이 다가올 때마다 책상

앞에 앉아서 급히 도망치려는 뱀의 꼬리를 쫓아가듯 놓칠세라 우선 휘갈겨놓은 것들을 조금 다듬

은 것이다."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글쓰기 텍스트'로 삼아 볼만한 좋은 글 모음집이

라 생각한다.